10월 첫째주

2021. 9. 28. 12:51일기

원래 다른 언어로 쓰였는데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나에게로 왔더라면 절대 지금과 같은 울림을 주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와의 대화는 물론이고 책과 영화, 심지어 음악도 해당된다.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언어를 통해 수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언어로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어제 일을 반성하기도 하고,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모든 단어들 속에는 나의 내밀한 경험이 들어서있다. 그래서 타인이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면 그 단어 안에 담긴 내 경험 속으로 불쑥 침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덥지 않은 말을 던지고 왁자지껄 떠드는 술자리가 싫다. 얼굴이 붉어지고 눈이 풀리고 목소리도 커진 상태로 취하는 과한 행동들이 싫다. 모두가 소주를 꿀꺽 삼킬 때 나는 그 공간 안에 함께 있지만 철저히 분리된 기분이다. 그 모임에 함께하는 것보다 힘든 것은 그 곳에 존재하는 나를 인식할 때이다.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겉도는 나를 볼 때 생겨나는 불안과 자기혐오를 견디기가 어렵다. 

 

학교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목적 이전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공통된 지점에서 문제의식을 찾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달려가는 이들이 동료로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심지어 오래 전부터 나와 같은 고민을 해온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얻는다. 조언은 그 말의 효용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말 속에 담긴 진심과 염려 섞인 눈빛에서 따뜻함이 느껴질 때 비로소 조언의 효력을 가진다. 

 

나에 대해서 다 간파한 것 마냥 구는 사람이 싫다. 나의 행동을 제멋대로 예상하고 기대했다가 나의 본모습을 보면 실망하고, 초반에는 열정이 끓어 넘쳐 부담스러울 정도로 행동하다가 결국 제 풀에 꺾여 시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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