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8. 01:14ㆍ책
역자 서문 앙드레 바쟁의 ‘영화적 사실성’
1) 영화의 심리적 기원 : 미라 콤플렉스
바쟁은 인간이 조형예술을 통해 "죽음(다시 말해 시간)에 저항"하려는 근본적인 심리학적 욕구, 다시 말해 '미라 콘플렉스'를 충족하려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집트 미라도 "겉모습을 보존하여 존재를 살려내려는" 인간적 욕구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후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이 겉모습만이라도 시간에 고정시켜 불변토록 했으면 하는 이러한 사실성에 대한 욕구에 바탕을 둔 조형예술은 수 세기 동안 계속돼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 중 하나로 이차원 공간에 삼차원 환상을 불러일으켰던 원근법과, 기계를 매개로 인간의 주관성을 최소화한 채 사실을 객관적으로 모방해내는 사진기술의 발견이 전에 없는 완벽한 외형의 모방을 가능케해주었지만 아직까지 움직임을 모방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런 점에서 앙드레 말로가 "영화는 조형 리얼리즘의 가장 진화된 양상일 뿐이다. 그 원칙은 이미 르네상스에 등장했으며 바로크 회화에서 극단적으로 표현된 바 있다"고 지적하면서 리얼리즘을 추구하려했던 조형미술의 연속선상에서 영화야말로 가장 진화된 형식이라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다시 말해 "영화는 순간적으로 포착한 피사체를 호박 속에 박혀있는 오래된 곤충들의 온전한 몸처럼 우리에게 그대로 보존해 줄 뿐만 아니라 바로크 예술을 경직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마치 미라가 움직이듯 (지금껏 경직되어 있던) 사물들의 이미지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2) 다큐멘터리적 사실성
바쟁은 조형예술의 존재이유가 리얼리즘이며 그 첨단에 영화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떻게 사실을 손상시키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내느냐라는 방법론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그 해답을 찾기까지 우리는 그 어느 예술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단순한 재현에서 인간적 표현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어김없이 바라보게 도니다. 여기서 우리가 영화의 여러 장르 중 가장 리얼리즘과 가까운 다큐멘터리로 시선을 옮겨본다면 바쟁의 리얼리즘에 대한 주장을 더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다큐멘터리는 어느 다른 장르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의 타고난 매체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미처 카메라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갑자기 발생한 사건들의 촬영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바쟁은 영화에서 사실성의 가치는 그 완벽한 재현이 아닌 표현의 진정성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 영화의 불안정성은 그 진정성을 설명해주고 있으며 빠진 자료화면은 남아 있는 영상자료의 네거티브 지문이자 음각으로 새겨진 기록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아오던 재구성된 다큐멘터리는 사실적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일까? 단 한 번의 촬영기회밖에 허용하지 않는 다큐멘터리에서 놓친 주요 장면을 '다시' 촬영하여 보충한다면 그것은 다큐멘터리의 가치를 훼손하는 짓이 아닐까? 이에 대해 바쟁은 "사실상 장면의 재구성은 두 가지 조건 하에서 용인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다만 "먼저 관객을 속이려는 의도가 없을 때, 그리고 사건을 재구성하더라도 그 본래의 속성에 모순되지 않을 때"라는 단서를 단다. 이와 함께 그는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사실성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단순히 재현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예술의 한 장르로서의 영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경고하길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술이 사실의 모방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바쟁은 "예술에서의 리얼리즘은 분명 속임수에서 비롯된다"고 전제하면서 "모든 미학은 반드시 무얼 남겨두고 버릴지 아니면 거부할 지를 선택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 미학이 영화가 그러하듯 본질적으로 사실적인 환상을 만들어낼 때 그 선택은 받아들일 수 없는 동시에 필연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미학적 모순을 만들어낸다. 예술은 선택 없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선택은 필연적이다.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완전한 영화가 오늘날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선택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현실로 복귀하는 셈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장 완벽하게 모방을 할 수 있는 매체인 영화 역시도 역설적이게도, 사실 그대로를 그저 모방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야만 예술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바쟁은 상기하고 있는 셈이다.
3) 영화, 혹은 '상상의 박물관'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다른 이론가와 달리 바쟁은 실재 일어난 일 이외에 연출된 장면까지도 사실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예로 들었던 다큐멘터리에만 사실이 존재하는 건 아니며 픽션 영화도 사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시되는 것은 카메라로 사실들을 어떻게 완전히 베껴내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선별하고 정렬시키느냐이다. 각각의 그림은 과거나 동시대 다른 그림들은 물론 미래에 도달할 그림에 비춰보면 그 회화적 가치를 달리하게 된다. 실재 박물관이 아닌 우리들이 머릿속에 떠올린 상상의 박물관에 사이좋게 늘어선 이들 작품들이 서로 주고받을 영향하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변형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며 예술작품의 삶 자체"라고 앙드레 말로는 설명한다. 감독이 각 장면이나 쇼트를 어떻게 자르고 붙이느냐에 따라 각 장면은 물론 영화 전체의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각가의 사실은 다른 사실과의 관계 속에서 본래 가치를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획득해간다. 그리고 바쟁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로한 변증법적 변형이다. 이렇듯 구체적 사실들의 나열로 진행되는 추상화 과정을 거쳐야만 영화는 사실을 저장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예술로 거듭날 수 있다. 이렇듯 사실들 간의 조합을 통해 그 조형성을 되살려 비현실로 인도하는 결정적 역할은 몽타주의 몫이다.
4) 이미지-사실
바쟁은 자신의 글에서 다음곽 ㅏㅌ이 몽타주의 기본원칙을 제시한다. 손이 아프니까 그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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