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은 이틀이야
난 아직 생일에 진심인듯. 자고로 생일 만큼은 가장 맛있는걸 먹고 내가 가장 행복한걸 해야 한단 말이다. S 생일이 19일이고 내 생일이 21일이라 20일에 공동 생일파티를 하자고 얘기했는데 정말로 성사되었다. J도 함께 했다! 그래서 내 생일은 7월 20일과 7월 21일이 되었다.
7/20
20일 새벽에 S에게 편지를 썼다. 난 손편지 쓰기 전에 꼭 컴퓨터로 한번 정리하고 손으로 옮겨적는다. 쓰다보니 진지해져서 중간에 많이 고쳤는데도 거의 프러포즈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난 진심이야..
워크숍 이틀째. 이 날은 파이토그램 필름 영사해보고, 각자 필름 카메라로 영상을 찍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고 정신도 없어서 내가 뭘 찍는지도 모른채 얼른 찍고 카메라를 넘겨주어야 했다. 카메라 로딩하고 필름카메라 다룰 때 다른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겨우 해냈다. 암실은 예상보다 무서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필름 케이스에서 필름을 빼내서 용액에 마사지를 하고 픽스 용액에 담그고 물로 헹구고. 암흑이 주는 위압감이 이토록 고통스러울 줄이야.. 그 와중에 케이스에서 필름을 전부 빼지 않은 채로 3분의 1만 용액에 담궜다가 한 십분 뒤에 자각해서 감독님이 암실 속에서 나를 도와주셨다. 아임 유어 슈퍼 히어로. 라고 하셨는데.. 매우 감사합니다. 이 날 네 시간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마스터피스를 창조해낸 옛 영화감독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문제는 이 날 원래 다섯시에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다섯시 오십분에 끝났다. 나 여섯시에 이태원 식당 예약해놨는데요.. 택시 잡아서 이태원으로 빠르게 향했다. 내가 초조해보였는지 기사님이 어디 빨리 가셔야 되냐고 여쭤보셨다. 사실 제가 6시까지 가야되는데요... 그때가 5시 58분이었다. 기사님 어이없으셨겠다. 근데 그 말 들으시자마자 미친듯이 달리심.... 카레이싱하는줄 알았다. 너무 빨라서 솔직히 좀 무서웠음. 기사님 운전실력이 엄청나셨다. 퇴근시간 광화문을 그렇게 빨리 통과하다니. 결국 평창동에서 이태원까지 이십분만에 도착했다..... 전설...
이태원의 비건 옵션 태국음식점인데 어떻게 이게 비건이야 말도안돼 너무 맛있잖아. 비건 닭강정이 제일 맛있었다. 당장 내일 또 오고 싶은 맛.
레터링 케이크 처음 받아봐.. 레터링 케이크가 좋은 것은 나(우리)를 위해서 문구와 디자인을 고민하고 그걸 픽업하고 약속 장소까지 가져온 정성에 감동하는 것..... S는 초록색 좋아하고 나는 노랑색 좋아하는데 어떻게 딱 이렇게! 심지어 맛도 있었다.
7/21
얼마전에 유튜브에서 프로이트 영상 봤는데 흥미로웠고 관심있는 학과 강의계획서에 프로이트 이름이 많이 등장하길래 아침에 교보문고에서 프로이트를 사려고 마음먹고 갔다. 오랜만에 간 광화문 교보문고는 여전히 냄새도 좋고 군중 속에 스르륵 스며들어서 책 구경하는 느낌도 좋았다. 작은 책방들도 좋지만 난 대형서점이 마음 편한것 같다.
근데 들뢰즈 삼. 왜냐면 꿈의해석 무겁고 사람들 손때 흔적이 타서 별로 사고 싶지 않았다. 마침 저 책 있길래 바로 집어왔다. 이렇게 책사는것과 함께 즐거운 생일 시작!
워크숍 마지막 날. 평창동은 참 좋은 동네야. 녹음이 우거지고 홍제천이 흐르고 멋진 산책로를 갖춘 곳. 여기 살고 싶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 첫째 날 만든 식물 파이토그램과 둘째 날의 각자 작업물들을 돌아가면서 영사했다. 저것은 전날 정신없던 내가 찍은 것. 생각보다 잘 나와서 신기했고 뿌듯했다. 디지털 작업은 컴퓨터에 파일로 존재하다보니 이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데, 필름 작업은 내가 직접 만지고 다루고 감으면서 작업 내내 내 작품과 물리적인 접촉을 하다보니 더 애틋해지는 것 같다.
😺랑 다섯시 반 쯤 만나기로 했는데 네시 쯤 끝나서 근처 카페에 가있기로 했다. 22분 거리기도 하고 내 생일 답지 않게 날씨도 좋아서 도보로 갔다. 동네가 너무 예뻐요. 근데 도보로 온 건 실수였다. 엄청난 언덕을 넘어야만 했다... 이 동네에선 무조건 버스타야된다.
카메라 심각하군. 아무튼 근처 카페 찾아서 왔는데 아늑하고 귀여웠다. 심지어 커피도 너무 맛있어! 커피 두모금 마셨는데 😺가 거의 도착했다해서 원샷하고 나왔다.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를 먹으러 왔어요. 가지요리랑 버섯리조또랑 라자냐 먹었는데 맛있었다. 또 가고 싶군... 다음에 가면 라자냐는 안 먹어야지. 고기 맛이 좀.... 약간 거부감들었다.
갑자기 서촌에 가고 싶어서 버스를 탔는데 가는 길 전경이........ 너무 너무 예뻤다. 최고의 순간..
아인슈페너로 유명하다는 곳에서 아인슈페너를. 휘핑크림이 쫀떡해. 맛있서. 조아. 밖에서 산책하면서 마셨는데 날씨가 시원해서 정말 좋았다. 청와대 근처 길도 참 예쁘고 아인슈페너도 맛있고. 짱. 서촌 책방들 몇 군데 구경도 했다.
집에 와서 스코프에서 사온 케이크, 자두, 올리브, 방울마토와 함께 진토닉 마셨다. 아주아주 기분좋은 하루. 케이크에 초를 못 분건 아쉽지만 전날 했으니까 됐지 뭐… 아니 그래도 생일날 초는.. 내년 생일에 불면 된다 그래!
다음날 일어나서 라즈베리 브라우니이 엄청 달고 꾸덕하고 맛있음.. 진짜 엄청 맛있음........... 단거 땡길 때 이거 하나 먹으면 매우 만족스럽겠다.
내가 태어난 날에는 비가 땅을 뚫을 정도로 많이 왔다던데. 그리고 내가 기억하던 나의 생일날은 항상 비가 오거나 이글거리는 햇빛이 강해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이번 생일은 무슨 이유인지 초여름처럼 선선하니 밖에서 활동하기 참 좋은 날씨였다. 세상이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