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봐야지
6월 초에 찍을 영화 걱정에 하루종일 머리가 지끈하다. 시나리오는 커녕 소재조차 떠오르지 않아 조급하지만 머릿속이 텅 빈것만 같다. 매일 나에게 찾아오는 무기력과 작은 게으름들을 이겨내는 것도 버거운데 어떤 이야기를 완성시키는건 무리다. 오늘 낮부터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극장전>을 다시 봐야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단전 깊은 곳에서 작은 세포들이 나에게 <극장전>을 보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극장전을 처음 본 건 아마도 2020년 여름쯤이다. 내가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때, 그 시작점에 이 영화가 있었다. 엉성하게 묶인 두 개의 이야기. 두달 전 쯤부터 그런 형태의 영화를 찍고 싶었다. 이 생각을 할 때 내 머릿속에 극장전은 이미 휘발된 상태이니 내가 새롭게 만들어낸 아이디어거나, 극장전이 나에게 남긴 흔적이 이년이 지나 내 머릿속에 싹을 틔운 것이겠지.
첫번째 이야기에서 상원과 영실은 길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함께 죽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동수와 영실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동수는 영실이 출연한 영화가 자신의 이야기라 말하며, 첫번째 이야기 속 단서들을 내뱉는다. 이로써 첫번째 이야기는 영화인지 현실인지 경계를 구분짓기 어려워진다. 두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남산타워, 여주인공, 말보로 레드가 등장한다. 두번째 이야기 속 동수의 말을 통해 관객은 첫번째 이야기를 회상하게 된다. 나 이런 얘기를 꼭 쓰고 싶다.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